脚色, Adaptation
원래의 의미는 "연극·영화·텔레비전·라디오 등에서 소설 따위를 원작으로 하여 극화하는 일"을 말한다.
과거에는 '각색'이란 원작의 순수성을 얼마나 훼손시키지 않고 옮기느냐(Fidelity to the original)가 중점이 되었으나, 현대의 문학이론에서는 예술의 포맷에 따라 접속이 되는 플롯이 다르기 때문에, 그 포맷에 호환되는 양식으로 재창조하는 것이 옳다고 간주되며, 따라서 각색을 'Adaptation'이 아닌 'Translation'으로 부르자는 주장이 제기된다. 즉 어떤 소설을 희곡으로 옮겼다고 한다면 그것은 문학 언어를 무대 언어로 Translation한 과정인 것이지, 연약한 소설의 플롯을 낯선 새로운 환경 속에 적응(Adaptation)시킨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또한, 외국 희곡을 한국의 무대에 올린다고 할 때, 번역투를 살릴 것인지 아니면 한국어의 표현으로 변형할 것인지도 각색에 있어서 해묵은 떡밥 중에 하나이다. 가령, 노벨 문학상을 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같은 경우를 보면, 뛰어난 영어 번역 때문에 (일부는 원작보다도 낫다고까지 하는) 널리 세계 문학계에 소개가 되었으나, 그 영어 번역이 영미권 독자의 입맛에 맞게 원작의 내용을 바꿔 놓은 수준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유사한 논쟁이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강의 <채식주의자>에도 제기되는 중인데, 이 역시도 번역 과정에서 원문의 뉘앙스가 상당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사실 애초에 맨부커상은 상금의 절반을 번역자에게 주는 문학상이다.) 외국작품이 한국에 번역되는 과정에서는 '카프카 논쟁'이라는 것이 있었다. 독일어는 한국어에 비해 명사형 관념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특히 카프카는 이러한 문장 구성을 즐겨 사용하여 특유의 까칠까칠하고 텁텁한 문체를 만들었다. 그런데 한국어는 명사형 관념어가 미발달한 언어이기에 카프카를 번역할 때 번역투로 작가의 문체를 살릴 것인지, 아니면 동사나 형용사 위주의 품사로 풀어 내는 식으로 한국어 문형으로 변형하여 가독성을 높일 건인지를 두고 논쟁이 제기된 바 있다. 결국 이 문제 또한 앞서 말한 'Adaptation' vs 'Translation'이라는 질문으로 환원되는 것이며, 이에 따라 각색자(혹은 번역자)의 문학적 역량이 점점 더 중시되는 것이 현대 문학의 경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