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농약같은 공연, 스텝을 가장 심하게 고생시킨 공연
배우도 가장 심하게 고생한 공연, 공연계의 레전드 오브 전설
기획의 변
공연에 대해서 생판 모르는 왕초보 기획으로서, 좀 더 공연팀에게 신경을 많이 써줄 수 잇는 기획이 되지 못했던 것이 못내 아쉽고 미안하게 생각됩니다. 초연인 배우, 어쩌면 마지막 공연이 될지도 모르는 배우 등 모든 공연팀 개개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그런 공연이라는 것을 쉽게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배우를 경험하지 못하고 기획일을 하면서 배우들이 준비기간 내에 느끼는 감정과 기분, 그리고 부담감에 대해서 이해심이 많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많은 관객분께서 재미있고 뜻깊게 저희 공연을 봐주셨다면, 그것이 공연팀에 대한 큰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저를 여러모로 도와주신 전임기획 은정누나, 예슬누님, 영주, 그리고 초보기획이 부족했던 부분을 커버해 주시느라 (안 그래도 힘든 역할에) 더 고생하신 연출님과 무감님, 배우를 하면서도 부족한 기획을 많이 도와준 수빈회장군, 마지막으로 가까운 곳에서 여러모로 도와준 배우짱님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공연팀 여러분~ 항상 공지사항으로 제 할 말만 하고, 힘내라는 그 말 한마디 못한 것이 후회스러운데요, 그 쉬운 한마디가 왜 그렇게 말하기가 힘들던지요... 쑥스러워서 그랬던 거니 너그러이 용서해주세요~ 그리고 마지막 공지사항입니다. 공연팀 모두들 정말정말 수고하셨고요, 모두 합평회 때 보아요~^^
연출의 변
-원작 걷어내기
체홉아저씨의 '세 자매'는 지방의 중소 도시에 살면서 모스끄바를 동경하며 살아가는 세 자매의 삶을 그린 희곡이다. 이 희곡을 원작 그대로 올리기에는 '19세기 말 ~ 20세기 초 러시아'라는 배경을 강하게 보이는 요소들이 작품 곳곳에서 정서적, 문화적 거리감을 느끼게 했다. 가령 당시 사회의 무기력감이나 계몽주의적인 차원에서의 노동의 의미, 지역적 특색이 강한 유머 등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되 가슴에 와 닿지 않는 요소들을 대본 속에서 많이 걷어내고 중화, 변화시켰다. 이와 같은 번안 작업은 관객의 감성에 좀 더 밀착된 공연을 하고 싶은 바람에서 이뤄졌다. 이처럼 우리는 '세 자매'를 통해 당시 러시아에서 상연되었고 변주되었던 '체홉 작품의 정수'를 구현하려는 목표를 가진 것이 아니었다. 우리 공연팀은 '세 자매' 속에 들어 있는 인물들과 골자적인 사건들을 빌어서 '우리들의 이야기'를 그 위에 덧입히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 고전은 삶의 풍부한 층위를 다루기 때문에 거기서 다양한 해석을 이끌어낼 수 있기에 현재의 관객과 교감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꿈을 좇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음악
사람은 꿈을 꾸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꿈을 품는다고 하여 그것이 쉽게 실혀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게 아닌데도, 자신이 그리는 꿈에 다가가려 발버둥을 쳐도 좌절만이 찾아올 때가 많다. 때때로 꿈은 허황되며, 또한 꿈을 향해 나아가는 길에는 수많은 변수와 장애물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꿈을 꾼다. 이 방향이 옳은 것인지. 앞에 무엇이 나를 가로막고 있는지 모르는 채로 우리는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마치 안개 속을 헤쳐나아가는 것처럼. 극이 진행될수록 세 자매의 꿈인 모스끄바로 가고자 하는 열망, 일을 해서 멋진 삶을 살고자하는 마음, 사랑으로 구원받으리라는 기대, 교수가 되겠다는 꿈이 무너져내린다. 세 자매의 현실을 가린 안개가 서서히 걷히면서 현실의 차가움이 모습을 드러내고, 세 자매는 절망 속에 빠져 들어간다. 그러나 자매들은 굳게 선 채로 힘든 순간을 버텨내고 삶은 계속된다. 세 자매가 맞이한 비극적인 사건들 사이사이에 녹아 있는 위로와 웃음이 삶을 지속시킬 힘이 되어 준다. 그 중에서도 예술은 지친 인간을 어르고 위로해주는 부드러운 손이 되어준다. 이 극에서는 주로 음악의 형태로서, 예술이 삶의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동반자가 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
-삶을 잏하기, 그리고 성장하기
문자로 이루어진 희곡을 극의 형태로 무대 위에 살려내는 작업은 절대적으로 '상상의 눈'에 의존하게 된다. 대사가 전해주지 않는 정보를 행간에서 읽어 내야만 극의 짜임새를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세 자매'는 희곡을 한 번 스윽 읽어서는 머릿속에 장면의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기도 하고, 인물들의 복잡하고 깊은 감정을 읽어내기 위해선 풍부한 인생 경험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러나 갓 스물을 넘긴 배우들이 각 배역들을 바라보는 '상상의 눈'은 빈약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애초에 세 자매를 선택했던 중요한 목적 하나가 개개인이 극 중 인물과 더불어 성장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맡은 배역을 연기로 표현하기보다 먼저 그 사람을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고민하기를 바랐다. 그러면서 자신과 삶의 범주가 다른 누군가를 이해하는 눈이 깊은 사람이 되길 바라며. 희망과 좌절이 윤회하듯이, 나의 대학시절 마지막 방학에 연극 바퀴를 굴리게 되었다. 업이 많아서인지 욕이 많아서인지 이번엔 연출 자리에까지 서게 되었다. 연극을 할 때마다 느끼지만, 나는 공연을 하면서 허물을 벗듯, 나를 감싸던 포장을 걷어낸다. 연출놀이를 하면서도 내 밑천을 확인하고 있다. 극이 틀을 잡아가면서 내 성향들과 취향들을 내비치는 모습을 보면 묘한 기분이 든다. 나를 이렇게 드러내리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었기에. 슬며시 녹아들어있는 나와 우리 배우, 스탭들이 함께 울리는 파동이 이 극을 보려 찾아와준 당신들의 가슴을 두드리게 되길.
special thanks to 두 달 간 각박한 세상의 시계를 따라가는 것을 잠시 늦추고 나와 함께 해준 배우님들, 공연의 절반을 완성해주신 스탭님들, 작품 번안을 같이 해준 지우, 목소리를 빌려준 상미, 이젠 마치 공연팀처럼 느껴지는 한성오빠 및 휴가를 반납한 군바리들, 총연 연우들, 선곡을 하고 음원을 구하는 데 도움을 주신 승익오빠, 멀리서도 마음써주신 부모님, 그리고 연출의 연출이자 기획으로서 버팀목이 되어준 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